상단여백
HOME 뉴스 피플
도시 떠나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어[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강수돌, <더불어 교육혁명>
   
 

먼 옛날부터 어버이가 아이를 낳는 일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과 어른이 서로 아끼는 짝님이 되어 사랑으로 아이를 낳을 적에는, 둘레에서 모두 기쁘게 웃음짓고 노래해 주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한테 이름을 곱게 붙여 주고, 언제나 따스하고 넉넉한 사랑으로 품어 주었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면서 모든 삶을 어버이한테서 배웠습니다. 풀이름을 배우고 꽃이름을 배웁니다. 엉금엉금 기다가 아장아장 걸으면서 "이 풀은 뭐야?" "이 꽃은 뭐야?" 하면서 궁금함을 풉니다. 어버이는 늘 빙그레 웃으면서 풀이름도 꽃이름도 가르쳐 주고, 벌레와 나무와 새는 저마다 어떤 이름인지 가르칩니다. 짚을 엮어서 바구니를 짜는 모습을 몸소 보여줍니다. 흙을 갈고 씨앗을 심는 삶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먼 옛날부터 따로 학교라는 곳이 없더라도, 아이들은 누구나 이녁 어버이한테서 모든 삶을 물려받으면서 배웠습니다.
 
아이를 그 자체로 '작은 우주'로 보거나 '우주의 선물'로 본다면 우리는 아이를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15쪽)
 
자기 삶에 대한 자유로운 결정권을 자살이 아니라 멋진 인생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온전한 인격체로 수용하는 것이다. 성적이나 외모 따위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이 쉬운 해법이 통하지 않는 건 왜 그런가? 그것은 대학입시라는 관문, 나아가 대학 입학 서열화라는 사다리 질서, 그리고 직업 차별과 사회 차별이라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을 가지 않아도, 또는 어떤 대학을 나와도, 사회경제적으로 차별 받지 않고 자부심을 누리며 더불어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26쪽)

 <강수돌 교수의 더불어 교육혁명>(삼인,2015)을 읽습니다. 대학교수인 강수돌 님은 '더불어 교육혁명'을 외칩니다. 함께 짓는 교육을 꿈꾸고, 서로 사랑하는 교육을 바라며, 같이 일구는 삶을 노래해요.
 
강수돌 님은 이론이나 지식으로 교육혁명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강수돌 님 스스로 세 아이를 돌보던 삶을 돌아보면서 '삶과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서울을 벗어나서 작은도시로 갔다가, 작은도시를 벗어나서 시골로 갔다가, 시골에서도 더 깊은 두멧자락으로 다시 삶자리를 옮기면서 '삶과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노동자 부모들은 '자식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갖는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나처럼 노동자 또는 하위층으로 살지 말라'는 말이다. (56쪽)
 
어릴 때일수록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부모와의 친밀한 시간이지 더 많은 돈도 아니요, 더 많은 학원도 아니다 …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릴수록 행복해진다. 아이의 마음이 평온해지면 아이는 스스로 호기심이나 배움의 욕구를 발동시킨다. (85쪽)
 
  
   
▲ 무엇이든 아이들하고 함께 누리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하루가 되면, '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느낍니다. 우리 집 아이들하고 '새로운 어린이 국어사전' 원고를 함께 쓰는데, 올림말을 모으려는 생각으로 벽에 종이를 붙이고 그림을 붙입니다.
 
 
한국에서 스스로 서울을 떠나서 시골에서 사는 대학교수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드물리라 봅니다. 정년퇴직을 할 무렵 시골로 가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한창 젊은 나이에 시골로 가는 대학교수는 참말 몇 사람이나 될까요? 입으로만 외치는 교육혁명이 아니라, 나부터 스스로 아이를 입시지옥에 밀어넣지 않으면서 '삶과 교육'을 함께 바꾸자고 외치는 지식인은 그야말로 얼마나 될까요?
 
교육은 '교과서 수업 진도'가 아닙니다. 교육은 '삶을 보여주고 배우며 함께 가꾸는 하루'입니다. 교육은 책이나 이론으로 할 수 없습니다. 교육은 언제나 온몸으로 할 뿐입니다. 교육은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하지 않습니다. 교육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오롯이 펼칠 수 있는 '철든 어른'일 때에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0∼4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면, 갈수록 대학 준비 시간이 빨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98쪽)
 
한 가지 짚을 점이 있다. 지금과 같은 팔꿈치사회, 곧 경쟁사회는 인류의 초기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인류 역사의 대부분(95퍼센트 이상)은 협동 사회요 공생 사회였다. 지금과 같은 경쟁사회는 불과 500년 내외의 일이다. (105쪽)
 
곁님하고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냅니다. 곁님하고 나는 인천이라는 도시를 떠나서 충청도 음성이라는 시골로 한 차례 옮겼고, 이곳에서 다시 전남 고흥으로는 시골로 옮겼습니다. 2011년부터 전남 고흥에서 지내는 동안 아직도 둘레에서 우리한테 묻는 말이 있는데, '왜 그 좋은 도시에서 이 구석진 시골로 왔느냐?'입니다. 오늘날 시골은 하나같이 도시로 아이들을 모조리 보내려 하는데, 그 '좋은 도시'에서 뭔 일이 있었기에 시골로 왔느냐 하면서 궁금해 합니다.
 
시골은 유배지일까요? 시골은 도피처일까요? 시골은 사람 살 곳이 못 될까요?
 
그런데 말이지요, 시골이 있어야 도시가 삽니다. 도시에는 논도 밭도 없어요. 시골에서 늙은 할매와 할배가 논밭을 일구어야 도시사람이 밥을 먹습니다. 고기를 얹는 상추도 시골사람이 비닐집이든 맨땅이든 상추씨를 심고 돌봐야 도시사람이 먹을 수 있습니다. 토마토, 오이, 능금, 배, 수박, 포도, 딸기 할 것 없이 모두 시골에서 납니다. 도시사람이 즐겨먹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다 시골에 있는 짐승우리에서 자랍니다.
 
강남 한복판에서 복숭아나무를 키우는 사람은 없어요. 서울 강남 땅값이 비싸기도 할 테지만, 매캐한 배기가스와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한 강남 한복판에서 과일밭을 일굴 사람은 없습니다. 깨끗하며 조용한 시골이라야 비로소 논밭을 일구어 아름다운 열매를 맛나게 얻습니다. 시골 아이들을 모조리 도시로 보내면, 한국 사회는 머지않아 무너지고야 말아요. 손수 밥을 얻는 길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한국 사회 젊은이뿐 아니라 기성세대도 곧 '잃어버린 식량주권' 때문에 크게 몸살을 앓아야 하리라 느낍니다.
 
  
   
▲ 엊그제에 우리 집 무화과나무에서 올들어 처음으로 얻은 무화과알을 먹기 앞서 손에 쥐어 느낌을 살피고 눈으로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먹기 앞서 멧새가 먼저 쪼아먹은 무화과알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너도 나도 자기 자식을 전쟁과 같은 입시 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그것이 행복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스스로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122쪽)
 
운동장이나 체육 시간까지 없앨 정도로 경쟁 분위기에 압도당한 학교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당연히도 일부 학생들은 좋은 성과를 낸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좌절감, 열등감, 절망감, 배신감, 무력감, 죄책감 따위에 시달리다 마침내 자살까지 감행하기도 한다. (227쪽)
 
도시를 떠나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도시를 떠나서 대학입시에 이제 그만 목을 매면서, 그러니까, 아이들이 대학입시에 목을 매지 않으면서 즐겁게 저희 꿈을 키우도록 북돋울 예쁜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새마을운동이 일으킨 농약바람과 비닐바람이 아닌, 두 손으로 기쁘게 땀흘리면서 논밭을 사랑하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하루 아이들하고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고 놀고 어울리면서 사랑을 누렸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아니라, 손수 길어올린 재미난 하루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부모들은 초·중 교육과정이 '의무 교육'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강제'로 학교에 보내야 한다. 일단 보내고 나면 학교나 당국이 요구하는 각종 시험, 심지어 일제고사, 그리고 대학 입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람 대접을 받는다. 그것도 이른바 '일류' 대학을 가야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253쪽)
 
학교에 안 가는 우리 집 아이들은 날마다 놉니다. 놀고 또 놀고 새로 놉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껏 놉니다. 여덟 살하고 다섯 살인 두 아이는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실컷 합니다. 지칠 때까지 놀고, 곯아떨어질 때까지 놉니다. 풀벌레 노랫소리와 함께 놀고, 밤바람과 밤별을 맞이하면서 놉니다. 바다에서 바다와 하나가 되어 놀고, 골짜기에서 숲과 하나가 되어 놉니다.
 
노는 아이는 맑게 웃습니다. 한참 놀다가 땀을 훔치면서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습니다. 때때로 글놀이를 하고, 곧잘 편지쓰기를 합니다. 언제나 나무하고 인사하고, 새랑 나비하고 마당에서 춤을 춥니다.
 
   
▲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며 노는 우리 집 아이들은 철마다 달라지는 바람과 들과 숲과 마을을 언제나 온몸으로 느끼면서 배웁니다. 큰아이는 자전거를 달리면서 휘파람을 부르며 놉니다.
 
시골은 일 년 내내 새로움과 신기함의 연속이다. 자연이 최고의 교과서임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 아이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면 부모가 경험한 세상의 잣대를 아이들에게 들이밀지 말고 스스로 행복하게 살면서 아이가 행복한 길을 찾도록 등불이 되면 된다. (321, 322쪽)
 
아이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아이는 '철'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는 봄에 봄을 배우고 가을에 가을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는 아침에 아침을 배워야 하고 밤에 밤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는 씨앗을 보며 씨앗을 배워야 하고, 열매를 보면서 열매를 배워야 합니다. <더불어 교육혁명>을 쓴 강수돌 님은 시골에서 오순도순 살림을 가꾸면서 '교육혁명'이 무엇인지 온마음과 온몸으로 새롭게 배우셨지 싶습니다. "더불어 교육혁명"이라는 말은 바로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바람을 마시며 숲을 마주하는 동안 새삼스레 깨달으셨지 싶습니다.
 
호박넝쿨이 뻗어 마당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늘 지켜봅니다. 호박꽃이 피고 지면서 알이 굵는 모습을 날마다 새롭게 바라봅니다. 먹음직스럽게 굵어지면 낫으로 서걱 베지요. 호박 한 덩이를 얻으면 이레 즈음 실컷 호박국에 호박볶음을 누립니다. 오늘은 뒤꼍 무화과나무에서 첫 열매를 얻었습니다. 어제 낮에 보았을 적에 잘 익었네 하고 쓰다듬었더니, 오늘 아침에 멧새가 먼저 쪼아먹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뿐 아니라 멧새도 무화과알이 아주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나 봐요.
 
비가 오는 밤에도 풀벌레는 노래합니다. 처마 밑에서 노래할까요? 아니면 커다란 호박잎 밑에서 노래할까요? 고즈넉한 밤노래를 들으면서 삶을 배우는 하루가 차분하게 저뭅니다.

함께살기  hbooklove@empal.com

<저작권자 © 영호남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살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