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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돌보고 어버이를 보살피는 기쁨[만화읽기]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
 
 
 
   
 
 
 양윤옥 옮김
 라이팅하우스 펴냄, 2015.12.5. 12500원
 
나는 두 어버이한테서 태어났습니다. 두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이윽고 몸이 많이 자란 뒤에 짝님을 만나서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를 낳으면서 나도 새삼스레 어버이가 됩니다.
 
나를 낳은 두 어버이는 저마다 다른 두 어버이한테서 태어났습니다. 두 어버이는 또 다른 두 어버이한테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두 어버이는 자꾸자꾸 이어집니다. 먼먼 옛날부터 서로 아끼고 보살피며 어깨동무하는 사이로 지내는 두 어버이는 언제나 고운 사랑으로 아이를 낳아 돌보았습니다.
 
‘나가사키 비탈진 돌계단에는 시장 다녀온 어머니들이 멀거니 서 있는 포인트가 있다. 마침맞게 어른어른 햇볕을 가려 주는 바람 통하는 길. 어머니도 어린 아와 남동생을 데리고 이곳에 멀거니 서 있곤 했다. 술주정 심한 아버지에게서 도망칠 때도.’ (5쪽)
 
   
 
 
만화책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라이팅하우스,2015)를 읽습니다. 이 만화책을 빚은 오카노 유이치 님은 어머니를 대단히 아끼거나 돌보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녁 어머니가 다기 아기로 돌아가듯이 거의 아무것도 못하면서 요양시설에서 지낼 적에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 준다든지, ‘어머니 밥’을 차려 준다든지 하지 못해요.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를 빚은 오카노 유이치 님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녁 나름대로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요양시설에서 모시는 일에다가 어머니하고 지내는 삶을 만화로 그리는 일입니다.
 
옛날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할 만해요. 옛날에는 제 어버이가 늙으면 어느 딸아들이든 집에서 늙은 어버이를 모시며 살았으니까요. 먼먼 옛날부터 어버이는 아이를 돌보고, 어른으로 자란 아이는 다시 늙은 어버이를 보살피면서 살림을 짓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을 주고받았어요.
 
그런데 만화책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는 어떻게 널리 사랑받는 책이요 만화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요? 만화를 그린 오카노 유이치 님은 그저 요양시설을 찾아갈 뿐이고, 똥이고 밥이고 돌봄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지만, 이녁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떻게 사람들 마음을 찬찬히 건드릴 수 있을까요?
 
“미쓰에, 어디 갔었어?” “앗, 히로코.” “저기가 나가사키야.” “가고 싶다. 여기(아마쿠사) 계속 있다가는, 애보기와 밭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히로코, 나랑 나가사키에 가자.” ‘아하, 엄니가 지금 아마쿠사에 가 있구나. 어머니 속에는 보물상자가 있고, 그 보물상자 안에 깜빡 들어선 것 같은 그런 묘한 순간들이 있다.’ (12∼13쪽)
 
‘요양시설에 어머니를 찾아가 딱히 하는 일 없이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의 신비로운 느낌.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의 이 신비한 따뜻함.’ (46쪽)
 
   
 
 
어버이가 아이를 돌볼 적에는 더 나은 시설이나 문화를 베풀어 주지 않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돌보며 언제나 사랑으로 어루만집니다. 반찬이 김치 한 조각만 오르는 밥상이라 하더라도 어버이는 아이하고 사랑을 나누는 밥상맡에 둘러앉습니다. 따순 밥 한 그릇으로 오붓하게 삶을 지으려고 하는 어버이예요.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늙은 어버이를 마주하는 오카노 유이치 님은 아마 한동안 아주 바빴으리라 느껴요. 스무 살이 넘고 서른 살을 지나는 동안 스스로 꿈을 키우려고 매우 바쁘게 지냈으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이처럼 ‘아이가 꿈을 찾아 달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 어버이예요.
 
이리하여 아이(오카노 유이치)는 어버이 곁에서 딱히 다른 하는 일은 없이 손만 맞잡는다든지, 함께 꾸벅꾸벅 졸며 해바라기를 한다든지, 어머니가 문득 들려주는 옛날 옛적 어린 삶 이야기를 가만히 받아들입니다. 뭔가를 더 해 주는 삶은 아니요, 뭔가를 더 해 주지도 못하는 삶이라 할 텐데, 이런 삶이라 하지만 아이와 어버이 사이를 잇는 사랑이라는 끈을 늘 차분히 돌아보면서 한 칸 두 칸 만화를 그려 넣습니다.
 
“할머니가 나예요?” “그렇구먼, 늙어 버린 미쓰에란다. 앞으로 너는 많은 일을 경험할 게야. 전쟁도 겪을 것이고, 원자폭탄 떨어진 도시로 시집가서, 술주정 남편 때문에 고생도 숱하게 하고, 큰아들은 대머리 번들번들.” “할머니는 얼굴이 참 고우세요. 좋은 일이 많았던 얼굴이에요.” (67쪽)
 
“엄니, 봄이 오면 쓰요시도 걸을 수 있어?” “하하, 아니야. 쓰요시 걸음마는 좀더 기다려야 해.” “그때도 아부지는 술 취해서 다 뒤집어엎을까?” “후유. 그 술버릇은 못 고쳐.” (81쪽)
 
   
 
 
어버이는 아이를 돌보면서 기쁩니다.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거든요. 아이는 어버이가 보살펴 주니 기쁩니다. 날마다 새로운 사랑을 받을 수 있거든요.
 
어버이는 날마다 밥을 새로 짓고, 옷을 새로 갈아입히고, 이야기를 새로 들려주면서, 어버이 스스로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아이는 날마다 밥을 새로 받고, 옷을 새로 갈아입으며, 이야기를 새로 들으면서, 아이 나름대로 새로운 숨결로 거듭납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고단하면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고단한 기운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를 돌보다가 문득 한숨을 쉬거나 거친 말이 새어나오면 아이는 이런 한숨이나 거친 말을 문득 듣고는 마음속에 앙금으로 쌓습니다. 아이를 돌보며 빙글빙글 웃는다면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웃음을 물려받아요. 힘들다 싶은 일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어버이라면, 어버이는 아이한테 노래하는 기쁨을 물려줍니다.
 
“미쓰에 언니, 내가 먼저 오게 됐네.” “후사코, 죽어 버렸니?” “언니는 천천히 와도 괜찮아.” (142쪽)
 
“언니, 마음껏 울어.” “후사코.” “날이 따뜻해져서 이 간지럼나무에 잎사귀가 가득해지면 간지럼 먹이러 오자, 언니.” (143쪽)
 
   
 
 
만화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두 아이를 돌보며 지나온 발자국을 되짚습니다. 어버이로서 내가 문득 골을 부리면 아이들은 나한테서 곧장 골부림을 물려받아서 골을 부립니다. 어버이로서 내가 즐거이 노래하고 춤을 추면 아이들은 어느새 활짝 웃음꽃을 터뜨리면서 나를 둘러싸고 신나게 춤을 춥니다.
 
어버이인 내가 얌전하면 아이들도 얌전합니다. 어버이인 내가 수다쟁이가 되면 아이들도 수다쟁이가 됩니다. 어버이인 내가 꽃을 상냥하게 쓰다듬으면 아이들도 꽃을 상냥하게 쓰다듬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돌멩이를 함부로 뻥뻥 차면 아이들도 돌멩이를 함부로 뻥뻥 차요.
 
아마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골부림이나 짜증을 물려받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물려준 대로 우리 아이들한테 골부림이나 짜증을 다시 물려줄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골부림이나 짜증을 물려주었어도 이를 삭히고 달래어 웃음과 노래로 바꿀 수 있어요. 우리 아이들도 저희 어버이한테서 기쁨을 물려받을 수 있고, 좀 바보스러운 대목도 슬기롭게 가다듬을 수 있어요.
 
“엄니, 잠 깨셨어요?” “먼 데까지. 먼 데까지 잠을 잤어. 엄청 먼 데까지 잠을 잤어.” (155쪽)
 
아이들하고 함께 꿈을 꿉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노래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삶을 사랑하면서 손을 맞잡고 춤을 춥니다. 만화책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는 책이름에 드러나듯이 ‘대머리가 된 늙은 아들’이 더 늙은 어머니가 살며시 열며 보여주는 보물상자 같은 숱한 이야기를 가만히 받아들여서 누린 하루를 들려줍니다.
 
살짝 늙은 수수한 대머리 아저씨가 폭삭 늙은 어머니한테서 보물상자를 엿보고, 이 보물상자를 살뜰히 아낍니다. 오늘 나는 조용한 시골에서 조용한 살림을 가꾸면서 왁자지껄 개구지게 노는 아이들한테서 새로운 보물을 느끼고 내 마음속에서 새로운 보물상자를 끌어내어 사랑스러운 씨앗을 심는 하루를 누립니다. 우리한테는 저마다 다른 보물상자가 있고, 이 저마다 다른 보물상자에는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이야기가 물씬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함께살기  hbooklov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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