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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가 알게 된 ‘할머니의 바다’
71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울고 있는 유족 김연옥 씨(사진=KTV영상 캡처)

어멍·아방·할망·하르방·오빠·동생 몰살 당하고 혼자 살아 남은 할머니의 4.3
외손녀의 할머니 사연 낭독, 추념식장 울음바다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1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한 가족의 사연이 소개됐다.

제주시 안덕면 동광리 출신으로 1948년 여덟 살이었던 김연옥씨는 4.3 당시 부모님 손을 잡고 불타는 마을을 떠나 매일 이 골 저 골 도망을 다녀야 했다. 눈이 많이 내린 터라 맨발이 참 시렸다.

끝내 잡혀간 곳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 수용소였다. 주먹밥을 하나 먹었을까,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랑 애기였던 남동생까지 군인들이 다 끌고 나갔다. 마지막 끌려 나가는 아버지가 눈앞에서 발로 밟히고 몽둥이에 맞는 걸 본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순간 누군가가 확 잡아챘고 아이는 그만 돌담에 머리를 부딪쳐 기절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혼자 깨어나 살아남은 그 여덟 살 아이는 김연옥 씨였다.

손녀 정향신(23)씨가 할머니의 4.3사연을 읽어가는 동안 이를 듣고 있던 할머니 김연옥 씨는 통곡했고 추념식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김연옥 할머니의 손녀 정향신 씨

다음은 김연옥 할머니의 사연을 낭독한 손녀 정향신 씨 글 전문.


저는 1942년생 김연옥 할머니의 손녀이고 제주시에 사는 대학생입니다. 오늘은 4.3유족이자 후유장애인인 저희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드리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많았습니다. 할머니가 글을 못 쓴다는 것을 몰랐었습니다. 세뱃돈 봉투에 제 이름을 써주셨던 2년 전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할머니 머리에 아기 주먹만한 움푹 파인 흉터가 있는데 그게 4.3후유 장애인 것도 작년 4월에야 알았습니다. 심지어 10살까지 신발 한 번 못 신어본 고아였던 것도 믿기 힘들었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얼굴도 마음도 고운 분입니다. 오늘은 검은 저고리에 흰 치마 입으셨지만, 제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항상 화사했습니다. 할머니는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바다를 좋아하는구나 생각만 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할아버지.할머니.아빠.엄마.동생이 바다에 던져져 없어졌다는 것을. 할머니는 당시 8세였습니다.

할머니는 4.3이후 대구에서 부산, 다시 서울에서 제주로 헤맸습니다. 한강에서 빨래도 하고 아이스깨끼도 팔며 악착같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18세에 제주로 다시 내려오게 됐습니다. 제주에서 살아야 부모님 잊지 않고 누구의 자식인지 기억할 것 같았다고 합니다.

친척 삼촌과 함께 시신도 없는 헛묘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년 정성스럽게 벌초 다니셨나 봅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고기 안 드십니다. 부모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다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꼭 참으면서 멸치 하나조차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할머니가 그러셨습니다.

'나는 지금도 파도치면 부모님이 '우리 연옥아' 하멍 두 팔 벌려 나에게 오는 거 닮아. 그래서 나도 두 팔 벌려 바다로 들어갈 뻔 해져'

할머니의 바다에 대해 이제야 알았습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멋쟁이 할머니가 그런 아픔 속에 살고 계셨는지 몰랐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 오기 전에야 할머니께 물어봤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바라는 게 무엇이시냐고. 마지막으로 우리 할머니의 마음을 전해보려 합니다.

'나는 어멍 죽은거, 물에 떠댕기는거 그런거만 생각하멍 살았주. 나 어린 나이에 무슨 마음으로 소분하고 식개하고 다녀신지, 어멍·아방·할망·하르방 아직도 피묻은 옷 입고 이시카부덴 저승갈 때 입는 옷 산 앞에서 태워드렸져. 우리 어멍 이런 내 마음 알아질껀가. 우리 부모 4·3때 겅 억울하게 죽지만 않아시면 학교 공부도 하멍 누구한테 지지도 않으멍 살아질꺼 닮아. 4·3만 아니어시면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말도 잘하고 관공서에 이신 사람들처럼 당당하게 살아져실거 닮아. 이제까지 억울한 마음만 들어나신디 우리 향신이가 들어주난 속이 풀어지는거 닮아'

할머니. 할머니는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예뻐요. 그러니 이제 자식들에게 못해준 게 많다고 미안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할머니는 힘든 시절 묵묵히 견뎌 오신 분입니다. 저랑 약속해요. 앞으로 울지 않고 매일매일 웃겠다고.

선대원  gh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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